역사속으로

[스크랩] 조선 왕실에서 글씨를 제일 잘썼던 사람.jpg...

청수블로그 2011. 4. 30. 19:36

 

안평대군

安平大君

 

세종의 제 3 왕자

 

 

 

 

 

 

 

 

 

 

 

 

 

 

 

 

 

 

 

이 세상 어느 곳을 도원으로 꿈꾸었나
은자들의 옷 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그림으로 그려놓고 보니 참으로 좋을씨고
천년을 이대로 전하여 봄직하지 않은가

 

<안평대군이 몽유도원도를 보고 쓴 시>

 

 

 

 

   세종

  

 - 문종 ---> 단종

 - 수양대군 (세조) ---> 예종

 - 안평대군

 - 임영대군

 - 광평대군

 - 금성대군

 - 평원대군

 - 영응대군

 

= 세종의 삼남

= 문종, 세조의 동생

= 단종, 예종의 삼촌

 

 

 

 

- 왕실에서 가장 잘 썼을 뿐만 아니라, 조선 4대 명필로 꼽힌다.

 

- 조선은 물론, 타국 명나라에서도 안평대군의 서체는 유명했다.

사신이 오면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는데, 명나라 사신들이 가장 원하는 선물이 바로 안평대군의 글씨였다.

 

- 안평대군은 가야금에도 능하다.

 

- 조선 산수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몽유도원도는 안견이 안평대군의 명으로 그린 그림이다.

안평대군은 안견을 특히 아껴, 그의 그림을 두루 소장하고, 지원해 주었다.

 

- 안평대군은 최고의 예술품 수집가였다.

그의 저택에는 방대한 양의 서적들과, 수백점의 그림 등 예술품들이 넘쳐났다.

이름만 들으면 알 작품들이 즐비하여 미술관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 또한 안평대군의 저택과 별장은 그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는데,

여러 대신들이 시와 정치를 논하러 안평의 집을 한 번 방문하면, 모두가 떠나려 하질 않았다.

 

 

 

<안평대군의 별장 - 무계정사>

대부분이 헐리고 터만 남았다.

 

 

- 안평대군의 호는 '비해당'인데 이는 세종이 내렸다.

안평(安平)이 편안하고 태평하다는 뜻이라, 혹시라도 안이한 마음을 가질까 싶어 비해(匪懈)라 지어준 것이다.

 

- 세종은 수양과 안평 두 왕자에게 적성에 맞는 일을 나누어 시키고, 자신과 세자를 돕도록 했다.

 

-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은 안평대군이 썼다.

 

- 수양대군은 무인을, 안평대군은 문인을 거느린 실세였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다.

 

- 수양은 왕이 되고자 했고, 안평은 그렇지 않았다.

안평은 전형적인 재상 타입이었다.

어린 조카를 끌어내리려는 수양과 그에 반대하는 안평은 대립할 수 밖에 없었다.

 

- 주요 대신, 문인들의 지지를 받는 안평대군의 기반이 수양대군 보다 더 탄탄했다.

게다가 단종의 세 정승(황보인, 김종서, 남지)은 안평대군을 신뢰하여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안평이 막고 있으니 수양은 자신의 '꿈'을 이룰 다른 방법이 없었고, 무력으로 정승과 대신들을 죽이고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단종은 겁에 질려 많은 권한을 수양에게 넘겨주고, 수양은 안평에게 역모죄를 뒤집어 씌운다.

 

 

- 안평대군은 36세에 형 수양대군의 사약을 받고 죽는다.

 

 

 

 

출처 : 한산이씨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들
글쓴이 : 매일하우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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